[머니투데이] 지진·태풍에도 끄떡없다, '공대 연구실'의 진화'…안전관리 우수연구실 인증’ 받은 포스텍 자기현미경연구실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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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1 / 4,412Li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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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텍 물리학과 자기 현미경 연구실, 연구실 중앙에 김지훈 물리학과 교수가 앉아 있다/사진=포스텍 |
지난달 23일 포스텍(옛 포항공대) 물리학과 자기현미경연구실. 50㎡(약 15평) 남짓한 공간에 지구 자기장의 10만배에 달하는 초전도 자석, 1m 가량 높이의 액체질소탱크 2대와 가스통 2개 등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잘못 다뤘다간 연구실뿐만 아니라 건물도 통째로 날려버릴 수 있는 위험한 실험장비가 가득했다.
“지진 났을 때 가슴이 철렁했겠다”며 취재에 동행한 최명용 포스텍 총무안전팀장에게 묻자 “건물이 폭삭 주저앉지 않는 이상 걱정할 게 없다”고 답했다. 최 팀장의 자신감은 어디서 온 것일까.
보통 공대 연구실 하면 어둡고 침침한 조명에 작업공구가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고 어젯밤 먹은 야식이 쓰레기통 주변에서 악취를 내뿜으며 쌓여 있는 모습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곳은 180도 달랐다.
자기현미경연구실 학생들과 김지훈 교수가 함께 손수 제작한 '4단 서랍형 공구함'/사진=류준영 기자 |
바닥에는 빨간색 점선과 노란색 실선 등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이 선을 넘어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의 표시다. 연구실 정중앙에는 바이트·밀링커터·드릴 등의 절삭공구부터 줄·정·스크레이퍼·바이스 등의 다듬질공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구를 정리·수납할 수 있는 4단 서랍형 공구함이 놓여 있다. 이곳 책임자인 김지훈 물리학과 교수와 그의 학생들이 손수 제작한 것이다.
벽면에 고정된 가스통/사진=포스텍 |
김 교수는 “연구실 내부 정돈이 잘돼 있으면 평온하고 안정적인 마음 상태로 연구할 수 있고 필요한 장비나 공구를 빨리빨리 찾을 수 있어 효율적”이라며 “정리정돈이 사실상 연구실 안전의 시작과 끝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실험실 벽면에 놓인 가스통을 비롯해 대부분 대형장비는 진동에 쓰러지지 않도록 벽이나 바닥에 고정된 상태로 설치됐다. 시약장에 안전하게 시약을 보관하고 노후장비를 교체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 이 연구실은 최근 학교 지원을 받아 300만~400만원대 훔후드(Fume Hood·화학실험 중 가스배출 기구)를 교체했다. 김 교수는 “사실 지방대는 연구비가 부족해 학교 측의 확고한 의지가 없다면 이런 고가의 안전장비를 구매하거나 교체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실험실에 있던 바퀴 달린 의자도 모두 고정형 의자로 교체했다. 무심코 의자로 이동했다가 테이블 위에 놓인 위험한 시약을 건드려 바닥에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환경 개선 투자로 자기현미경연구실은 지난해 11월 ‘안전관리 우수연구실 인증’을 획득했다.
‘안전관리 우수연구실 인증’ 제도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013년부터 연구현장 중심의 자율 안전관리체계 구축을 지원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다.
2013년 시범사업 이후 2015년 국가연구안전관리본부 출범과 함께 연구실안전관리 우수연구실 인증제는 현장의 의견을 반영해 지속적인 운영·관리, 심사기준 개선, 심사위원 교육 실시, 인증심사위원회 구성 등을 실시했다. 이를 통해 연구실안전 관계자를 비롯한 기관장의 안전의식 제고, 자율적 안전관리 역량 강화에 기여해 왔다.
포스텍에선 자기현미경연구실뿐만 아니라 고에너지플라스마연구실, 극한환경로봇연구실, 기능성생체분자재료연구실, 잔류성유기오염물질분석실, 생체광음향연구실 등 총 14개 연구실이 이 인증을 획득했다. 대부분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은 평균 2~3개 인증을 확보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압도적인 기록이다.
시약통을 시약장에 안전하게 보관 관리한 모습/사진=류준영 기자 |
포스텍 연구실안전환경관리자 이아라씨는 “연구실은 인증 전후가 확연히 차이난다”며 “학생들이 호텔급 연구실에서 실험하면 하나의 소중한 인격체로 대우받는 느낌이 들어 좋다는 얘기를 종종 한다”고 말했다.
포스텍은 신임 교수가 부임해 연구실을 신설할 경우 우수연구실 인증을 받도록 지원한다. 또 지난해 11월15일 발생한 규모 5.4의 지진 이후 안전분야 통합 개선프로젝트 TF(태스크포스) 활동을 강화했다. 이전까지 연구실에서 일어나는 아찔한 화재와 안전사고는 대부분 내부 부주의가 주원인이었으나 이제는 지진과 강풍 등이 새로운 위험요인으로 부각된다. 최 팀장은 “조만간 전국 대학 처음으로 지진과 관련한 실험실 안전매뉴얼을 내놓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영희 국가연구안전관리본부장은 “지난 5년간 인증받은 연구실에서 사고가 일어난 경우는 0건, 연구실안전법 이행률은 95%에 달했다”며 “인증제를 통해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자들이 좀더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연구활동에 매진하도록 계속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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