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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조선] 물리학과 수학의 철학적 결합 복잡계이론·정수론 연구 부부의 고민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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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7 /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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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과 수학의 철학적 결합 복잡계이론·정수론 연구 부부의 고민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포스텍 김승환·최영주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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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포항시에 있는 포스텍에서 정수론을 설명하기 위해 칠판에 수식을 적은 최영주 교수가 남편 김승환 교수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photo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 문제를 고민하는 과학자 부부가 있다. 인문학과 거리가 먼, 물리학과 수학을 연구하는 포스텍 김승환·최영주(55) 교수 부부가 철학적 주제를 고민하는 이유는 뭘까.

지난 3월 31일 오후 2시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에 있는 포스텍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 김승환 소장실에 도착하자 부인인 최 교수가 점심을 거르고 때마침 도착했다. 김 교수는 복잡계이론의 국내 권위자다. 정수론을 연구하는 최 교수는 미국 수학학회에서 초대 펠로우로 지명할 정도로 학계 저명 인사다.

이 부부의 연구 분야는 물리학과 수학 분야에서도 난해하다고 알려져 있다. 다행히 이 부부는 기자가 상상했던 과학자는 아니었다. 깡마르고 머리가 헝클어진 아인슈타인을 닮은 괴짜형 과학자는 그 자리에 없었다. 두 사람은 마음씨 좋은 50대 중반의 이웃집 부부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인터뷰는 난관의 연속이었다. 연구주제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인터뷰는 3시간 동안 이어졌다. 먼저 남편인 김승환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에게 ‘어떤 연구과제를 다루고 있는지’를 물었다. 김 교수는 지난해 11월 한국과학기자협회가 주는 올해의과학자상을 받았고 한국뇌연구협회 회장과 APCTP소장으로 일했다.

“내가 주로 하는 연구는 복잡계와 카오스이론에 대한 거다.” 김 교수는 “어렵게 생각하지 마라. 단순하지 않은 게 복잡한 것”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복잡계의 대표적 연구 분야가 뇌다. 뇌의 뉴런은 서로 소통하며 패턴을 만든다. 이걸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를 연구 중이다. 의식과 마취의 세계가 최근 연구 과제다.”

이쯤에서 기자는 지적 허기를 느끼고 백기투항했다. 김 교수에게 부연설명을 요청했다. “반딧불이는 각자 빛을 내는 리듬이 있다. 그런데 수천 마리의 반딧불이가 모여 리듬에 맞춰 가며 번쩍 하고 섬광을 낼 때가 있다. 리듬을 맞추거나 때로는 리듬이 깨지기도 하는데, 여기에 일종의 패턴이 있다. 대중이 모인 장소에서 연설이 끝나고 박수를 칠 때 사람들은 각자의 의지대로 손동작을 하지만 점점 리듬을 맞춰 간다. 심장도 수많은 세포가 체계적으로 움직여 펌프질을 만들어야 정상 작동한다. 사람의 뇌도 이런 비선형을 통해 복잡하게 작동한다. 시각·청각을 통해 접수된 정보를 머릿속에서 계산한 뒤 말을 하거나 행동하는데 이게 사람마다 다르다. 거기에 실린 감정과 느낌 또한 제각각이다. 그러나 이때 뉴런의 리듬과 패턴은 존재한다. 이건 의식의 문제로 귀결되고 이 부분을 이해하고 정량화하기 위한 연구가 바로 신경과학의 성배라고 할 수 있는 뇌과학의 핵심이다.”

사람의 뇌, 그중에서도 의식을 측정하는 게 가능할까. 이 문제에 관한 한 부부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김 교수는 “과학의 발전상을 놓고 볼 때 (뇌를 측정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뇌는 뉴런이 보내는 펄스(0.1볼트)를 통해 서로 소통한다. 예컨대 우울증 환자와 정상인이 가진 뇌의 패턴은 다르다. 여기서 뇌파의 변화는 측정이 가능하다. 파킨슨병이나 간질 같은 경우도 뇌의 뉴런에 뭔가 정상적이지 않은 활동이 있기 때문에 생긴다. 이걸 잡아내면 질병을 고칠 수 있다. 의식을 쫓다보면 마취에 대한 연구가 선행된다. 마취는 잠을 자는 것보다 낮은 단계로 의식 수준이 떨어지는 걸 말한다. 뇌파에는 분명 리듬이 있지만 예측가능하지 않은 비선형으로 나타난다.”

사람의 뇌에는 1000조개의 뉴런이 시냅스를 통해 서로 연결돼 있다. 뇌연구는 복잡계에서 우주의 신비를 푸는 것 이상으로 어렵다. 뇌의 복잡한 구조와 움직임을 정량화할 수 있다면 인간에 버금가는 이른바 인조인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가정이 성립된다. 여기서 최영주 교수는 반대 의견을 냈다. 최 교수는 “인간의 뇌를 정량화하려면 수학으로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수학자 입장에서 볼 때 이건 불가능하다. 그게 된다면 뇌를 바꿀 수 있다는 얘기가 되는데, 그럼 ‘인간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 문제에 봉착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그동안 이런 사안에 대해 남편인 김 교수와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다시 김 교수의 말이다. “2년 전에 렉스라는 사람이 현재 사용 가능한 모든 인공장비를 갖고 로봇을 만든 적이 있다. 100만달러가 들어서 일명 ‘100만불의 사나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이때 하지 못한 부분이 바로 뇌였다. 과학계는 인공뇌를 만들고 싶어하지만 쉽지 않다. 스위스 로잔공대에서 8년 전부터 IBM의 수퍼파워 블루진 컴퓨터를 갖고 뇌의 뉴런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일종의 지도를 만들고 있다. 세계 최고의 컴퓨터로 현재까지 뉴런 100만개의 뇌파를 정량적으로 분석했다고 한다. 사람의 뇌는 1000조개의 뉴런이 있으니까, 현대과학으로 뇌 전체를 분석하는 게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뇌연구에 대한 새로운 기술이 엄청나게 빨리 발전하고 있다. 뇌의 각 영역이 연결된 일종의 고속도로망을 볼 수 있고 일부 뉴런의 작동을 정지 또는 재가동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인터넷 관련 서비스업체 구글(Goole)이 ‘빅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정보를 추출하는 알고리즘을 계속해서 만들고 있고, 이건 복잡계 이론을 현실에 접목한 응용과학의 일종이라고 했다. 그는 공상과학에나 등장할 법한 미래상을 예측하기도 했다. “인간의 뇌는 예상과 달리 소프트웨어적인 부분보다 하드웨어적 접근이 더 어렵다. 뇌는 성장하고 시냅스가 바뀌거나 뉴런은 죽고 다시 생성된다. 학습에 따라 뇌회로도 바뀐다. 이걸 다 계산해 내야 하기 때문에 뇌가 복잡계의 성역으로 남아 있는 건지 모른다. 더 예민한 사안은 뇌와 유사한 회로가 만들어진다면 컴퓨터는 서로 네트워크를 통해 복잡한 작용을 수렴할 수 있고 스스로 통제하거나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게 가능해질 수 있다. 인간의 자연어를 이해하고 해독하는 컴퓨터가 지능 면에서 사람을 앞서고 있다.” 김 교수가 언급한 사례는 2011년 초 IBM이 만든 세계 최고 컴퓨터 ‘왓슨’이 미국 TV 퀴즈쇼에 출연, 인간 퀴즈왕을 제치고 우승한 것을 말한다. 그는 이어 기자에게 “SNS의 글 가운데 사람이 작성한 것과 기계가 작성한 걸 구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기자는 의식의 문제에 대해 얘기하다가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만취했을 때 필름이 끓기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김 교수는 “과음을 자주 하시나요. 저는 물리학자일 뿐입니다”라며 웃어 넘겼다.

김 교수가 연구하는 복잡계 연구의 핵심 중 하나는 비선형 이론이다. 비선형은 변화에 대한 결과가 예측불가능하게 증폭되는 것을 말한다. 비선형계에서는 미세한 변화가 계속 증폭돼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 현상을 ‘나비 이론’이라고 부른다. 또 이런 현상의 반복을 과학계에서는 ‘카오스’라고 한다.

김 교수는 현재 아산병원과 함께 마취의 심도를 지표화한 의료기 개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고 했다. 어느 단계까지 의식을 낮춰야 가장 적합한 마취가 이뤄지는지에 대한 지표를 만들고 그에 따른 처방이 가능한 장비를 개발 중이다.

“인간이 의식을 갖는 시점이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인지 아니면 시력을 확보한 뒤부터인지 모른다. 뇌에는 우리의 마음과 인류 진화의 열쇠가 담겨 있다고 한다. 일종의 우주라고 보면 된다. 1950년대 오징어의 뇌에서 뉴런이 보내는 신호를 측정한 사람이 호킨 헉슬리인데, 현대과학은 그것보다 고등동물을 놓고 실험하고 있다. 기계가 인간의 뇌에 버금가는 인공뇌를 갖게 된다면 이건 아주 근원적 이슈와 연결될 것이다.”

김 교수는 APCTP의 5대 소장이다. 초대 소장은 1957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양전닝(楊振寧·중국계 미국인)이다. “APCTP를 만든 건 북미와 유럽에 비해 아태지역의 물리학적 토양이 척박했기 때문이다. 센터 설립 18년이 지났고 이제는 아태지역의 물리학 수준이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올라섰다. 세계 물리학계와 네트워크도 강화됐다.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센터 출신이 노벨물리학상을 받을 것이라고 본다.” 연간 아태이론물리센터를 찾는 외국인 방문객은 약 3000명 수준이다. 아이디어를 좇는 물리학자들은 일종의 노마드 기질이 있는데, 서양의 물리학자들이 포스텍 아태센터를 하나의 거점으로 이용하고 있다.

최 교수에게 질문을 돌렸다. 남편의 이야기가 1시간 넘게 진행되는 동안 최 교수는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최 교수에게 “정수론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수(數)에 대해 이해하는 이론이다. 수학은 수와 관계돼 있다. 수의 종류는 소수, 유리수 등 다양하다. 방정식에서 근의 해(解)를 구할 때 정수해가 존재하는지를 연구한다.” 최 교수는 정수론의 응용 분야를 이어 설명했다. “15라는 수가 있다고 치자. 이건 3과 5를 곱해 만들어지는데 이때 3과 5는 소수다. 1은 소수가 아니다. 소수는 가장 뼈대가 되는 수다. 모든 수는 소수로 표현할 수 있다. 소수끼리의 곱은 쉽게 계산이 된다. 반대로 천만 단위 이상의 합성수를 주고 소수를 찾으라고 하면 수백 년이 걸린다. 알고리즘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이런 수론을 정보 보안에 응용하면 보안키를 만들 수 있다.

쉽게 설명해서, 미국 전역의 연락처가 담긴 전화번호부가 있다고 하자. 이름 같은 힌트를 알면 쉽게 원하는 전화번호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전화번호만 달랑 주고 누구의 연락처인지 찾으라고 하면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다. 비슷한 논리다. 소수를 활용한 정수론을 사용하면 해커가 뚫을 수 없는 보안키를 만들 수 있다. 영상처럼 엄청난 데이터를 압축해 보낼 때 발생하는 에러는 그동안 잡아내지 못했는데 정수론을 활용해 이 부분을 보완하는 게 가능해졌다. 수론에서 쓰는 함수를 이해해야 하는데, 이걸 설명하려면 하루도 부족하다.”

김 교수는 수학의 암호이론이 최첨단 암호에 응용돼 금융계 등에서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컴퓨터는 이진수라서 0과 1로 표현된다. 원래 숫자가 컴퓨터에 들어가면 이진수로 코드화되고 이 숫자의 길이가 10의 500승 이상 되면 그 소수를 찾는 게 불가능해진다. 현재 수퍼 컴퓨터로는 10의 500승 이하까지 찾을 수 있지만 최소 몇 년이 걸린다. 이걸 사용해 금융 보안칩을 만드는 거다. 국내에는 이런 회사가 없어서 금융사들은 모두 해외에서 이 칩을 사다 쓴다. 이건 뭘 의미하나. 해외의 누군가는 그 보안칩의 답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정수론을 연구하는 김 교수는 2005년 과학기술부가 선정한 여성과학기술자상을 수상했고 2008년에는 가장 닮고 싶은 과학기술인에 선정됐다.

“고전음악을 들으면 아름답다고 느낀다. 분석하지 않는다. 그냥 느낀다. 직각 삼각형도 아름답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균형과 비율에 있어서 그렇다. 일반적으로는 분석하지 않는 수와 비율을 연구하는 사람이 수학자다. 피타고라스정리는 2500년이나 됐지만 이제서야 일반인이 대충이라도 이해를 한다. 당시 소 100마리를 잡아 축복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엄청난 연구 성과였다. 수학은 이처럼 몇백 년을 내다보는 학문이다.”

김 교수는 “국내 과학자가 세계 권위의 수학상을 받으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일본이 메이지유신 때 수학을 받아들여 정점에 오를 때까지 80년이 걸렸다. 우리는 광복 이후라고 해도 일본에 비해 연구 기간이 짧다. 리만 가설 같은 21세기의 숙제를 풀려는 노력이 국내에서도 활발하다.”

그는 수학이 학생들에게 “어렵고 하기 싫은 학문”으로 취급받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수학계가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 휠버트라는 수학자는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수학문제를 설명하고 나서 그가 동의할 때 수학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성적 위주의 교육 방식도 바꿀 필요가 있다. 수학은 규칙이고 창의성의 원천이라는 걸 알려나가야 한다.”

이 부부는 올해로 결혼 32년이다. 최 교수는 “사정이 있어 남들보다 결혼이 빨랐다”고 했다. “1982년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남자친구와 해외 유학을 가겠다고 하자, 부모님이 결혼을 전제로 승낙을 했다. 그 바람에 만 23살의 동갑내기는 서둘러 결혼했고 함께 미국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10여년이 지난 뒤 포스텍 설립 때 돌아와 이곳에 터를 잡았다.”

두 사람이 만난 건 1979년 5월 이화여대에서 열렸던 쌍쌍파티에서다. 이화여대 수학과에 다니던 최 교수는 친구를 통해 서울대 물리학과 2학년인 김 교수를 파트너로 소개받았다. 이날 인연으로 두 사람은 평생의 파트너가 됐다. 이 부부에게는 대학생 아들이 둘 있다. 모두 기계설계디자인을 전공하는 공학도인데, 공교롭게도 물리학과 수학을 기본으로 배워야 한다.

두 사람은 해외 활동이 잦아 가끔 출장길에 예고 없이 마주치기도 한다. 과학자로서 상대의 영역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게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최 교수의 말이다. “가끔 낯선 곳에서 남편을 만날 때가 있다. 서울역이나 김포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출장이 많아 서로 일정을 확인하기 어렵다. 심지어는 모 학회에 둘 다 초청을 받고도 현장에 가서 그 사실을 안 적이 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의 부부관계가 딱딱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두 사람은 새벽 5시30분이면 손을 잡고 포스텍 내 수영장으로 향한다. 남편은 “올빼미가 아침형 인간으로 바뀌었다”고 투덜대지만 아내인 최 교수는 마냥 좋은 듯 웃기만 했다. 이날 최영주 교수는 칠판에 수학공식을 적어가며 정수론과 이를 응용한 정보통신 및 보안에 대한 추가 설명을 했으나 기자의 이해 부족으로 그 부분은 인터뷰에서 제외했다. 아는 만큼 보이니, 공부가 더 필요함을 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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