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창조경제 출발점이 바로 기초과학… 中 ‘萬人계획’ 본받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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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3 / 1,392Li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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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초대석> “창조경제 출발점이 바로 기초과학… 中 ‘萬人계획’ 본받아야” |
김승환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 소장 |
박천학기자 kobbla@munhwa.com |
‘어지럽고 복잡함의 조화는 천지현황(天地玄黃)을 이루고/ 우주(宇宙)는 혼란스럽고 지극히 먼 곳이어라/ 시공(時空)이 교대로 변하나 다 그 정해진 양이 있고/ 모든 것들이 흘러 그 모두가 모이는 곳이 따로 있구나/ 천의(天衣)는 자르고 깎으나 그 바느질 자국이 없고/ 태극(太極)과 평형(平衡)의 법이 곧 그 기본이라/ 학식 있는 전문가는 이제껏 그 혼으로 시를 지으시니/ 진실된 마음으로 지으신 문장을 깊이 깨닫노라.’
중국 물리학과 수학의 거장 양전닝(楊振寧·92) 칭화(淸華)대 고등연구원 교수와 천성선(陳省身·1911∼2004) 전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2004년 7월 톈진(天津)시 난카이(南開) 대학에서 만나 지은 시다. 양 교수는 1957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이고 천 전 교수는 20세기 미분기하학(微分幾何學)을 개척한 세계적인 인물이다. 두 과학자는 중국 과학계의 정신적 지주로 통한다. 천 전 교수는 2004년 12월 타계했다. 과학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것이 과학자의 자세로 ‘기이한 것은 함께 보고 의심나는 뜻은 서로 분석한다’는 것이 이 시의 제목이자 요지다. 두 과학자는 미국에서 연구활동을 하다가 2004년과 2000년 각각 중국으로 귀국했다. 지난 16일 오후 경북 포항시 포스텍 내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 김승환(55·포스텍 물리학과 교수) 소장은 만나자마자 이 시를 먼저 소개했다. 그는 “두 분은 과학을 하는 올곧은 자세를 가르쳐 주고 있다”며 “미국에서 연구활동에 정진했지만 고국으로 돌아가서 물리학과 수학 분야, 즉 기초과학에 혁신을 일으켜 중국이 과학 분야에 집중 투자하고 결국 과학 초강대국으로 자리 잡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 말했다. 두 과학자의 영향으로 중국은 2008년 말 ‘천인(千人)계획’을 세웠다. 천인계획은 중국 정부가 과학기술 분야 등에서 국가적인 인재 1000명을 육성하기 위해 중국계 해외 석학을 영입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불과 4년여 만에 4000여 명의 과학자들이 모국을 위해 모여들자 중국 정부는 2012년 9월에는 ‘만인(萬人)계획’으로 바꿨다. 해외 고급 인재와 중국 내 인재 1만 명을 10년 동안 키우겠다는 것으로, 두 과학자가 선도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김 소장은 “이 시를 센터 내 회의실에 걸어놓고 두고두고 보면서 읊는다”며 안내를 했다. 김 소장 역시 한국의 풀뿌리 과학 육성을 위해 미국 유학을 마다하고 31세에 귀국했다. 그는 “기초과학은 미래를 먹여 살리는 중심 역할을 하는 풀뿌리 학문이며 기초과학 육성은 과학강대국으로 도약하는 근간”이라고 강조했다. 김 소장은 2013년 9월 임기 3년의 센터 5대 소장에 취임해 우리나라 과학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센터 최연소이자 한국인 최초의 소장이다. 이전 소장의 이력을 보면 김 소장의 위상은 여실히 증명된다. 초대 소장은 앞서 소개한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중국의 양 교수, 2대 소장은 1998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러플린(64) 전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3·4대 소장은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재단의 고문인 피터 폴데(74) 박사다. 김 소장이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특히 1948년 설립된 막스플랑크연구재단은 독일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 80여 개의 연구소를 두고 있다. 그동안 30여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해 ‘노벨상 사관학교’로 불리는 곳이다. 김 소장은 “센터 소장은 상징성이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며 “국제적으로 한국의 과학기술 수준을 인정받아 소장이 됐다”고 전했다. 이후 인터뷰를 센터 내 ‘카페’에서 진행했다. 아늑한 분위기에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그는 “연구원들이 커피를 마시며 토론을 하고 피아노를 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명동 한복판에 있는 커피숍에 버금가는 시설이 연구소 내에 있네요. 분위기가 연구소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2대 소장인 러플린 전 교수의 아이디어입니다. 피아노도 그분이 들여 놓았습니다. 오해를 자주 받는데, 한마디로 휴식을 취하면서 서로 토론하도록 하기 위한 시설입니다. 연구활동을 하는 학자들은 주로 혼자서 연구활동을 하는데, ‘땅만 파는’ 식의 연구로는 얻는 게 없습니다. 소통하는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고 가장 활발한 연구가 진행됩니다. 이를 위해 일부러 카페 느낌이 나도록 만든 것입니다. 대부분의 세계적인 연구소는 편안한 소파에 몸을 깊숙이 박고 향긋한 커피를 마시며 토론하는 카페를 갖추고 있습니다.” ―센터는 미국과 유럽의 거대 연구소와 경쟁하기 위해 설립된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포항에 본부를 둔 기초과학 유일의 국제연구소입니다. 미국은 아인슈타인이 있었던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의 이론물리연구소, 유럽은 이탈리아의 국제이론물리연구소(ICTP)가 대표적인 기초과학연구소입니다. 이곳은 세계적인 이론물리학자들의 꿈의 연구무대입니다. 아시아와 태평양지역에서도 이런 무대를 만들기 위해 10개국이 모여서 1996년 만든 곳이 이 센터입니다. 최근 라오스, 몽골, 우즈베키스탄, 인도에 이어 카자흐스탄이 새로 가입해 회원국은 15개 국가입니다. 중국의 양 교수, 일본의 아리마 아키토(有馬朗人·85·전 문부과학상) 이화학연구소 이사장, 한국의 조용민(70) 전 서울대 교수, 대만의 리위안저(李遠哲·78) 노벨화학상 수상자 등이 합심해서 아시아와 태평양지역 국가의 기초과학을 발전시키고 세계를 이끌 기초과학자들을 키워내기 위해 설립했습니다. 또 그 나라의 과학 리더 양성도 필요해서 입니다.” ―포스텍에 설치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센터는 2000년까지 서울 홍릉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캠퍼스에 있었지만 인프라가 약했습니다. 이 때문에 센터 국제이사회에서 센터 제공기관 공모사업을 실시했고 2001년 초 포스텍이 끌어들였습니다. 서울지역 대학 등 2곳과 포스텍이 지원했는데 포스텍이 선정됐습니다. 당시에는 KTX도 없었고 서울에 비해 오지였지만 포항가속기연구소라는 굴지의 인프라를 등에 업고 포스텍과 경북도, 포항시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유치했습니다. 1964년 이탈리아 북동부 아드리아해 연안의 트리에스테 시에 들어선 국제이론물리연구소와 처지가 비슷합니다. 국제이론물리연구소가 들어선 이 지역은 연구소 클러스터 지역으로 도약했고 유럽 최대 과학도시가 됐습니다. 센터도 앞으로 연구소 클러스터를 형성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장담했더니 이 센터 국제이사회가 동의를 했습니다. 우리 정부도 40억 원의 예산을 매년 지원하고 있습니다. 물론 회원국가에서 가입할 당시 지원한 예산도 있습니다. 이를 통해 꾸려나갑니다. 이곳은 30여 명의 박사급 연구원들이 상주 연구하는 등 300여 명의 젊은 연구원이 연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중 58%가 외국인입니다.” ―연구활동이 활발해 세계 곳곳에 연구원이 진출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주로 이론물리학을 연구합니다. 즉, 사물의 이치를 연구합니다. 이론물리학자들은 노마드(Nomad·유목민)에 비유됩니다. 끊임없이 학문의 경계를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려고 합니다. 연구자들은 연구과제에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좋은 연구환경을 찾아 떠돕니다. 이곳에서는 연간 2500여 명의 연구자들이 찾아 40여 개의 학술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이름이 알려지면서 국내는 물론 독일, 중국 등 곳곳에 무수히 많은 이곳 ‘졸업생’이 진출해 있습니다. 센터의 연구활동은 예컨대 물리학과 신경과학으로 접근해 의식활동을 모니터링하고, 마취의 경우 언제 오는지 등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의 기반을 다지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 우주론, 입자천문학, 응집물리(고체가 생기는 원인 등 새로운 물질이 생기는 원리) 등도 연구합니다.” ―김 소장께서는 8년 전부터 풀뿌리 기초과학 살리기 운동을 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과학자는 민간단체 및 국민들과 소통해야 합니다. 정부는 이를 위해 ‘멍석’을 깔아주는 역할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소통이 확산되면 궁극적으로 ‘문·이과’가 통합된 과학교육을 통해 전 국민이 과학을 기본 소양으로 지니고 과학이 국민들의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문화의 개념’으로 스며듭니다. 저는 우리나라 기초과학진흥협의회 부회장도 맡고 있습니다. 협의회는 국내 기초과학 종합연구를 계획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풀뿌리 기초과학연구가 기반이 돼야 창의적인 연구가 활발해지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기초과학 연구자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올해 기초과학연구사업(일반 연구자사업의 기본 연구), 일명 ‘풀뿌리 연구 지원사업’이 570개로 2013년 1659개에 비해 34% 수준에 불과합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꾸준한 연구역량 유지가 중요한데 정부는 창의적 과제처럼 수월성 위주로 지원하다보니 이런 곳이 타격을 입고 있습니다. 기초과학 분야 지원은 매년 요동칩니다. 예측 가능한 연구가 지속돼야 하지만 지원 축소는 결국 기초과학자들을 거리로 내모는 꼴밖에 안됩니다. 이를 챙기기 위해 목소리를 냈는데, 결국 정부의 재정문제로 줄어든 것 같습니다. 다가올 미래를 의식해야 합니다. 특히 젊은 과학자들의 수준은 오히려 갈수록 높아지고 있으며 해외로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1970년대 말에 대학을 다니고 1980년대에 유학을 했습니다. 당시에 비해 요즘에는 국내에서도 연구중심대학이 설립되고 학부교육도 첨단연구시설에서 이뤄져 탁월한 연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초과학을 이해하고 단기성과보다는 중장기 축적된 성과를 얻어야 하는데 조화가 안되는 것 같습니다. 중국의 만인교육을 본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센터와 관련 있는 곳이 미래창조과학부와 교육부인데 특히 미래부는 새 정부 들어 많은 관심과 기대 속에 출범 9개월째가 됐습니다. “창조경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내고 기초과학부터 벤처창업까지 전 주기 생태계를 만들어가기에는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습니다. 미래부가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려면 창조적 연구개발수행의 중심으로서 위상을 정립해야 합니다. 창조경제의 구현을 위해 일자리 창출과 벤처창업 등이 중요하지만 너무 단기간에 추진하려고 하면 이를 뒷받침하는 기초과학 분야가 소홀해지기 쉽습니다. 창조경제가 중장기적으로 성공하려면 창조적 연구개발이 바로 서야 하며 그 시작점이 항상 기초과학임을 알아야 합니다.” 김 소장은 인터뷰 말미에 오는 4월부터 3년 임기의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학연합회 차기 회장에 이미 자신이 내정돼 있다고 밝혔다. 이 연합회는 1990년 설립됐다. 양 교수가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 소장과 연합회 회장을 맡은 적이 있다. 두 곳의 수장이 되는 김 소장. 이미 그의 위상은 국제 과학계가 인정할 정도로 최고라는 의미다. 인터뷰=박천학 차장(전국부) kobbla@munhw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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